노영민의원의 욕심. 자리가 그렇게 만든다.

유명환 전 외교부장관일이 터진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민주당 노영민의원의
아들문제가 언론에 나왔다.
26세인 아들을 홍재형 국회 부의장실에 보좌관(4급)으로 근무시켰다는 것이 골자다.
(참고-의장과 부의장은 국회의원으로서의 보좌관 + 의장, 부의장으로서 보좌진을 따로 더 둔다.
상임위원장은 상임위원장 수당과 한 명의 인원이 추가되며, 의원회관실은 폐쇄하고 보통 본회의장 방(사무실)을
사용한다.)
유명환 장관 딸 문제가 나왔을때 왜 그만두게 하지 않았을까?
나는 사실 이 점이 더 궁금하다.
그러면서 유장관에게 비난의 말을 던지는데 별 어려움은 없었는지.
그나마 자기 의원실에 보좌관으로 쓰지 않은것을 다행이라 해야 할까?

대중들이 욕하는 지점은 아버지의 권력을 이용해 26세 아들을 부의장실 보좌관으로 밀어 넣었다는 점(특혜)일게다.
즉 부모의 힘으로 아들이 4급 자리에 앉은것이 유명환의 경우와 무엇이 다른가라는 질문이다.

노의원은 이런 자리는 공채보다는 대부분 인맥(특채)으로 이루어지며-맞는 말이다-, 자기 아들이 미국대학을 나와
영어와 경제학에 뛰어나기 때문에 - 즉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특혜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경험치로 일반화하면 [26세, 미국대학 졸업] 이 정도의 스펙이면 보통 국회의원실에서 인턴 정도를 많이 한다.
그것도 한시적으로 미국유학을 준비중이라고 하면 당연히 인턴으로 뽑힐 수가 없다.
국회의원실의 정식 인턴자리도 일반 회사를 위한 스펙 강화용이든,  의원회관에서의 승진용이든
'아무나' 얻기는 쉽지 않다. 물론 아는 보좌관이 있으면 꽤 쉽게 되기도 하다.

국회라는 곳 만큼 '나이'를 중시하는 곳도 흔치 않은 것 같다.
보좌진(4급 보좌관 부터 9급 비서까지) 채용시 가장 고려하는 것중의 하나가 나이이다.
보좌관보다 나이많은 비서관이 간혹 있긴 하지만 입장이 껄끄럽기 때문에 서로 (특히 보좌관) 기피한다고 보면 된다.

......

노영민의원은 인터뷰를 하지 말던가 아니면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를 무한 반복했어야 했다.
TV인터뷰에 반박하는 장면을 보면서 의원이 개념이 없는 건지, 보좌관이 아무 생각없는 것인지가 궁금해졌다.
아마 둘 중의 하나이리라.
.....

이런 법률은 반드시 필요한 듯 싶다.
국회의원의 친인척을 보좌진으로 임명하지 못하게 하고, 보좌진을 임명하면 최소 6개월 가량 자리를 보장해 주는..
뭐 이런거.
전자는 매우 중요하다. 보좌진 7자리중 4명을 친인척으로 채운 의원도 봤다.
4년마다 선거를 치른다는 핑계로 별다른 견제장치도 없고, 어떤 말과 행동을 해도 면책되는 국회의원들에게
언론과 국민들의 관심이 더 필요하다.

사실 선거는 개인 인물보다 그 당시 정세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훨씬 많지 않은가. 
점점 더 선거가 '로또'화 되가는 상황에서 선거를 강력한 견제장치라고 우기지는 마시라.

.....

참 이건 어떻게 되가고 있나.
8월 28일 신문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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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논란 헌정회 육성법 개정 추진” “前의원 월 130만원 지원 부당”

원희룡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최근 통과된 ‘대한민국 헌정회 육성법 개정안(헌정회 육성법)’을 대체할 입법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헌정회 육성법은 65세 이상의 전직 국회의원들에게 매달 130만원씩의 국고를 지원토록 하고 있어 논란이 됐다.

원 사무총장은 27일 “헌정회에서 자체 후원금을 내는 등 펀드를 만들어 진짜 어려운 분들에게만 지원을 해야지 국고
예산에서 충당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며 “헌정회에서도 실제 어려운 사람들만으로 연금 수혜 대상을 한정하면 300명 정도”라며 헌정회 육성법 개폐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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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회의가 시작되는데 '헌정회 육성법'이 개정되는지?
왜 이건 말이 없을까
그냥 조용히 지나갈꺼라는 느낌이 든다
이 법률안의 개정이 우리 국회의원들의 상식을 평가하는 좋은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 같다.

....

'왜 이런 비상식적인 일들이 생기고 그런 말을 할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내 대답은 '자리가 그렇게 만든다'이다.

의원회관에 떠도는 유머가 좋은 예다.
[의원과 장관이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면 어떻게 될까
답은 움직이지 않는다. 둘 다 버튼 누를 생각을 못 하니까]

by shrek | 2010/10/21 13:52 | 정치, 경제 대충 보기 | 트랙백 | 덧글(0)

외국인 채권 이자소득세 논쟁. 오히려 토빈세 도입 고려해야 할때

아침부터 뚜껑이 열린다.
개념없는 2개의 글이 서울경제와 한국경제 사설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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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신문 2010.10.13
[기자의 눈/10월 13일] 일관성 없는 채권과세

최수문 기자 (증권부)

외국인의 국내 채권투자에 대한 이자소득세 부과를 검토하겠다는 정부 당국자의 발언에 채권시장이 출렁거렸다. 외국인의 채권투자 자금이 국내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원ㆍ달러 환율을 급격하게 떨어뜨리고 있어 이런 유동성 유입을 줄여보려는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채권 투자자금에 이자소득세를 부과할 경우 채권매수세가 줄어들고 원화의 절상압력이 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자소득세 면제조치는 지난해 3월 외국인의 채권투자를 늘리기 위해 도입한 제도라는 점에서 1년 반 만에 다시 과세로 돌아선다는 것은 정책 면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외국인들이 국내 투자를 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이 바로 정책의 일관성이기 때문이다. 글로벌국채지수(WGBI) 편입 추진과 장기채권 투자유치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발언이 주무부서인 기획재정부와 사전 조율 없이 나왔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없지는 않다. 비록 금융위원장이 한 여당의원의 질의에 대한 답변과정에서 한 발언이라고 해도 과세체제를 흔들 수 있는 발언은 신중해야 마땅하다.
물론 이자소득세 부활 주장에 대해 시장의 반응은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다. 발언이 있은 지난 11일 일시 채권시장이 요동을 쳤지만 12일 다시 강보합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업계 전문가들도 외국인이 세금 때문에 한국채권을 팔거나 하지는 않을 거라고 말하고 있다. 부과될 가능성이 있는 세금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국내 채권은 여전히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고 또 원화 강세에 대한 기대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과세 가능성은 말 그대로 가능성일 뿐인데 시장의 반응이 컸던 것은 그만큼 시장이 불안정하고 채권 가격에 대한 부담이 크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국내 상황 자체만 놓고 보면 실물경기 수준에 비해 채권가격이 너무 올랐기 때문에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쨌든 최근 글로벌 환율전쟁이 치열해지는 와중에 우리나라도 결코 국외자가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 셈이다. 환율관리에 보다 철저하고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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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사기다.
외국인에 대한 채권 이자소득세 면제는 2009년 3월 세계금융위기로 한시적으로 만든 제도이다. 
한시적인 제도의 중지논의를 가지고 과세 일관성이 없다고 우기면 용감한건지 무식한건지....답이 없다.

한국경제신문의 사설은 같은 내용이지만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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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 신중히 접근해야
입력: 2010-10-12 17:47 / 수정: 2010-10-13 05:03
외국인이 채권에 투자해 얻는 이자소득에 다시 과세하는 방안이 거론돼 논란을 빚고 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그저께 국회 국정감사에서 외국인 채권투자에 대한 원천징수세 면제를 폐지하자는 한나라당 의원의 주장에 "관계부처와 협의하겠다"고 답변한 것이 발단이 됐다. 원론적인 입장 표명이었지만, 금융시장에선 국내에 들어와 있는 해외자금이 도로 빠져나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면서 원 · 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주가는 급락하는 등 여진이 가라앉지 않는 상황이다.
지난해 3월부터 세금을 면제하고 있는 외국인 채권투자에 대해 다시 과세하자는 주장은 해외부동자금의 과다 유입을 막아 금융시장의 과열을 진정시키려는 취지다. 올해 외국인자금 유입액이 지난달 말까지 70조6000억원을 넘고 이 중 채권투자액만 58조5000억원에 이르고 보면,이들 자금이 국내 시장에서 이탈할 경우 금융시장의 심각한 혼란과 후유증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외국인 채권투자에 대한 과세부활은 보다 신중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안된다. 당장은 해외자금의 과다 유입을 막고 들어온 자금을 내보냄으로써 환율 안정에 효과를 볼 수 있겠지만, 외국인의 장기투자 유도에 역행하는 데 따른 부작용을 염두에 둬야 한다. 자칫 빈대 잡으려다 초가를 태우고 마는 우(愚)를 범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가뜩이나 외국인의 채권투자가 1년 미만인 통화안정채권에 몰려 있어 장기채권 투자 기반을 확대하는 것이 우리 금융시장의 오랜 과제다. 더욱이 정부가 대부분 3년과 5년인 국고채의 만기를 10년으로 장기화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마당에 외국인 채권투자에 과세하는 것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해외 유동성의 과잉유입을 막아 국내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것은 물론 시급하다. 그렇더라도 대책은 해외자금의 성격을 구분해 단기거래에 제동을 걸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자금의 국제이동 자체를 막는 것은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에게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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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훨씬 낫다. 단지 처방이 다를 뿐이다.

아마도 맨 마지막 줄의 내용때문에 처방이 다른것 같다.
결제화폐권에 속한 나라가 아닌 경우 자금의 국제이동에 제한이 없는 것은 폭탄를 안고 있는 것과 같다.
지난 외환위기와 이번 금융위기도 무역수지에 의한 것이기 보다 외화의 급격한 입출금에 따른 결과이다.

특히 현재는 국내유동성이 아니라 외화유동성에 의해 자산시장(채권, 파생상품, 주식)이 규모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게 천장을 치고 한꺼번에 빠져나간다고 생각하면 우리 금융시장은 또 한 번 난리를 칠 것임이 분명하다.
외환보유고도 넉넉하고 무역수지도 좋은 지금이 바로 토빈세([Tobin's tax] 단기성 외환거래에 부과하는 세금) 도입을
고민해야 될 이다. 외국인 채권에 대한 이자소득세 면세 폐지는 말할 것도 아니다.

정부관련 연구기관에서도 파생금융상품과 외환거래에 대해서는 과세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기형적으로 비대한 파생금융시장과 아무런 장벽이 없는 외환거래에 대한 과세는 현재 가장 유효한 정책수단으로
보인다.

브라질은 2009.10월 투기성 단기 투자 유입-외국인의 주식거래에도 부과-에 대해 2%의 금융거래세를 부과했으며, 올 10월 5일에는 금융거래세(IOF)의 세율을 4%로 올리기로 했다.

환율은 여기서 본질적인 것이 아니지만 토빈세는 -정부가 원하는- 원화 절하에 좋은 무기이기도 하다. 
외화의 입출금에 대한 급격한 변동을 막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한 컨트롤을 어느 정도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by shrek | 2010/10/13 12:13 | 정치, 경제 대충 보기 | 트랙백 | 덧글(1)

왜 선거명함은 촌스럽나?

요즘 길거리에서 선거 명함을 받곤 한다.

다들 느끼겠지만 파랗거나 녹색이고 모양새도 거의 같다.

사진만 바꾸면 누구 것인지도 모를 정도다.

왜 촌스러울까?

선거 홍보 명함/홍보물도 광고의 일부이고, 마케팅일텐데 왜 그럴까?

짧게 정리해 보면

1. 기획자가 후지다.
   선거기획자는 선거와 광고/마케팅 양쪽을 다 알아야 하는데
   둘다 알기 어렵다. 
   또 선거라는 것을 확실히 경험하고 느끼는 사람은 보통 총괄 기획자 정도 인데, 이는 캠프당 1명 정도이다.
   2년 마다 선거가 있고 캠프당 1명 정도가 배출되니까 인원 자체가 적다.
   그 인원의 일부가 국회보좌진으로 가고, 선거기획사를 차리니까 더 인원이 줄어든다.
    
   간혹 정통한 선거기획자가 있긴 하지만 선거가 워낙 많이, 동시에 치뤄지기 때문에
   선거캠프에서 좋은 기획자를 구할기가 어렵다.
   특히 지금처럼 예비후보 단계라면 더더욱 그렇다. 
   본선에는 예비후보가 정리되어 그 캠프에 있던 선수들이 나설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예산을 이긴(공천을 받은)
   그 팀 멤버가 본선까지 가기 때문에 선수가 영입되어도 영향력을 미치기 어렵다.

   선거기획자가 후지다는 것은 그냥 주위에서 본대로, 아니면 예전에 경험했던 선거방식대로 간다는 의미다.
   고민없이 - 나름대로 고민이 있었겠지만- 가고, 수준도 낮으니까 좋은 광고가 나오기 어렵다.

2. 후보자를 이기는 기획자가 드물다.
   선거후보자는 보통 50대, 60대 이다.
   그 주위를 싸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 그 이상 연배이다.
   조금 새롭거나, 파격적인 형태를 들고 오면 일단 후보자는 반대한다.
   자기 눈에는 너무나 파격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옆에 있는 사람들은 보통 더 난리다. 
   더 난리인 이유는 자기 눈에도 파격적으로 보이고, 더 큰 이유는 후보자가 반대하니까
   거기에 동조하는 이유도 크다.
   좋은 후보자는 좋은 기획자를 '모셔와' 아주 말을 잘 듣는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10% 미만이다. 흔치 않다.

3. 기획자가 자기 줏대가 없다.
    이 말은 기획자가 후지다는 말과 일맥상통하기도 하다.
    선거 캠프처럼 말이 많은 곳은 없을 것이다.
    후보자나 선거관계자 그리고 후보자 지인들은  보통 기획자가 구상한 선거 전반적인 마스터 플랜이나
    전체적인 흐름에 대해서는 태클을 걸지 않는다.
    이유는? 그 정도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가장 쉽게 태클을 걸 수 있는게 명함 / 홍보물 / 현수막 정도이다.
    선거영상이나 로고송은 상대적으로 태클이 약하다. 잘 모르는 부분이니까.
    이런 상황에서 선기획자는 이런 난관을 뿌리치고 자기의 생각을 밀고 나갈것인가, 아니면
    말이 너무 많이 나오니까 적당히 갈 것인가 고민을 하게 된다.
    결론은 후자쪽이 일반적이다.
    기획자가 자기 생각을 밀고 나간다면 후보자를 비롯해 여러 사람들을 설득시켜야 하는데
    그 과정이 너무 험난하다.
    
    또 선거캠프라는 곳이 권력투쟁의 장-당선 이후 자리싸움-이기 때문에 토론과 설득보다는
    다툼의 성격(본질적으로)이 강하기 때문에 기획자가 자기 의도를 밀어부치면 캠프내에
    적을 많이 생긴다.
  
     
   

by shrek | 2010/03/12 15:42 | 정치, 경제 대충 보기 | 트랙백 | 덧글(0)

아카데미상 Ex - 부부가 9개 종목을 석권. 제임스 카메론은 섭섭하려나?

언론에 나왔듯이 이번 아카데미는 캐슬린 비글로우의 [허트로커]가 감독.작품상등 주요 6개
종목을 석권했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는 미술,촬영,시각효과 3개 부문 수상에 그쳤다.

알려진대로 제임스 카메론은 캐슬린 비글로우와 91년도에 이혼했다. 
이혼후에 터미네이터에서 만난 린다 해밀턴과 또 결혼했고 99년도에 다시 이혼했다.

암튼 캐슬린 비글로우 영화를 쭉 보면 제임스 카메론을 만난 이후 영화의 짜임새가 
대단히 좋아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만나기 전에는 감감적인 영상은 있지만 뭔가 어설픈 느낌을 주었었다.
그녀의 대표작으로는 이혼 후 캐슬린 비글로우가 감독하고 제임스 카메론이 제작을 맡은 [폭풍속으로]다.
지금 다시보면 역시! 재미있을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여러번 본 기억이 난다.

1995년에는 [strange days]를 발표했는데 개인적으로 꽤 좋아했던 작품이다.

이 두작품이 계속 기억에 남았있었는데, [허트로커]를 보며 오래간만에 그녀의 이름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개인적으론 [허트로커]보다는 [아바타]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은데 아마도 아카데미 심사위원들은 
[타이타닉]에 대한 학습효과가 컸나보다.

by shrek | 2010/03/08 20:20 | ...을 읽다 | 트랙백 | 덧글(0)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

요즘 정치권 돌아가는게 우습다.
사실 웃기지도 않다.

여의도에 있으면 그 안에서 매몰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과의 생각과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

엄청나고 좋은 수가 아니라 그냥 '건전한 상식'에 기반하면 되는데 그게 잘 안되나 보다.
상식(common sense)을 의미하는 영어에서 common이 무슨 말이지 여의도는 곰곰히 생각해 봐야한다. 
 

웃긴 풍경 하나.

자유선진당의 박선영의원은 본인이 위장전입을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4월 이봉화 당시 보건복지가족부 차관이 농지매입을 위해 위장전입한 사실이 드러나자 “즉시 경질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후 이 전 차관은 또 다른 문제점이 드러나 낙마했다.

지난달 김준규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김 총장의 위장전입 사실이 확인됐을 때에는 위장전입 한 번 하지 않고 자녀를 키우고 있는 저는 부모 자격이 없는 것인지 자괴감마저 든다는 논평을 내기도 했다.

그리고 나서 본인의 위장전입은 학군배정 때문이지 투기목적이 아니라고 둘러댔다.


웃긴풍경 둘.

민주당 김종률위원이 의원직을 상실했다.

단국대 교수와 법무실장으로 단국대 이전 관련 업무 처리 중 상대 업체 2곳에서 (컨설팅 비용으로) 각각 1억원씩 받았다.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언했지만, 2심 재판부와 대법원은 이전 대상의 법무실장이 거래 상대 업체에게 컨설팅을 해주고 돈을 받는 다는 것은 악질적인 범죄라며 실형을 선고했다.

김종률의원이 정운찬 총리 인사청문회에서 공격하는 모습은 참 보기 민망했다.

사실 김종률의원은 야당의원으로서는 적격이다. 말 잘하고, 법률에 해박하고. 게다가 다소 공세적이다.


민주당은 김종률의원의 대법원 선고를 정치적 탄압이라며 대변인 성명까지 내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런데 정치적 탄압이라고 반발하기에는 죄목이 꺼림직하다.


웃긴풍경 셋.

이명박 대통령의 개각이 후보자들의 여러 가지 문제로 난항중이다.

위장전입은 기본이고, 탈세까지.....대충 나올만한 것들은 다 나왔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후보 2명은 희생하자고 하고, 더 나아가 정운찬 카드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한나라당 지도부는 일단 모두 후보자를 임명하는 것으로 밀어부칠 모양을 취하고 있다.

예전에 ‘고작’ 위장전입 때문에 총리지명에서 낙마한 민주당 장상 최고의원 입장에서는 화가 날만하다.

by shrek | 2009/09/25 11:08 | 정치, 경제 대충 보기 | 트랙백 | 덧글(2)

[아침햇발] 최장집, 손학규의 경고

 

한겨레 신문에 정남기 논설위원이 ‘최장집, 손학규의 경고’라는 글을 올렸다.

‘민주당에 보내는’이라는 말이 생략되었는데, 이건 누구나 ‘당연하게’ 알고 있다는

의미일게다.

병이 있으면 그 원인을 찾아서 고쳐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게 빠른 길이고 옳은 길이다.

자꾸 대증요법을 구하고, 정치적 셈법만 하는 모습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생각이나 해 봤는지 모르겠다.

정치공학도 수준이 있다.

손학규의 수원 장안 선거 출마고사 정도가 되야 정치공학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잔대가리’는 나도 알고, 너도 안다. 재미없다. 그만해라.

...


[아침햇발] 최장집, 손학규의 경고

지난 4월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한 뒤 여권 한쪽에선 박근혜 전 대표를 원망하는 소리가 높았다. 박 전 대표가 나서기만 했어도 판세가 달라졌을 것이란 얘기다. 당 지도부도 은근히 이쪽으로 패배의 원인을 몰아갔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패배의 원인은 정부와 한나라당의 독단적인 국정운영과 민심 이반에 있었다.

5개월 만에 처지가 뒤바뀌었다. 한때 한나라당을 추월했던 민주당의 정당지지율은 30% 안팎에서 정체 또는 하락세로 돌아섰다. 한나라당이 30%대 중후반까지 상승하면서 지지율 격차가 다시 커지는 상황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지지도는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에 힘입어 50% 가까이 치솟았다. 기존 지지층에 더해 중도층까지 끌어안은 모양새다.


이번에는 민주당이 통합과 연대를 들고 나왔다. 10월 재보선이 위험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야당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후보 단일화를 위한 연대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는다. 민주당이 허울뿐인 구호라고 평가절하하는 정부의 친서민 정책이 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주당에 닥친 위기의 본질은 과연 정파 난립 때문일까? 민주당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먼저 내놓아야 한다.


요즘 민주당은 몇 달 전 한나라당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지지율 정체의 원인을 정파간 분열로 돌리는 태도가 그렇다. 민주세력이 연합하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일의 선후가 바뀌었다. 전통 지지층 회복 이후 당이 더 나아가지 못하는 원인을 찾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자기 혁신과 변화를 통해 신뢰 회복에 나서야 한다. 통합과 연대는 그다음 문제다. 통합을 한다고 지지율이 올라간다는 보장도 없다. 2007년 대선 때 경험하지 않았는가.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파의 이합집산이 민심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을.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최근 “이명박 정부를 공격하는 것이 진보인 것처럼 이해되고 있다”고 민주개혁 진영의 자세를 꼬집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잘잘못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설득력 있는 대안을 만들려는 노력 없이 비판에만 매달린다는 것이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재보선 불출마를 밝히면서 “정부의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을 사기·위장으로만 안이하게 비판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당장의 전투가 중요한 게 아니고 미래에 대한 대안과 해법을 가지고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되찾는 일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변화를 요구하는 이런 목소리들은 작은 울림에 그치고 있다.


친서민 정책에 재미를 본 이명박 정부는 하루가 멀다 하고 관련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마이크로크레디트 등 민주당의 주요 정책이었던 것까지 갖다 쓰고 있다. 감세정책도 사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그 기조가 많이 후퇴했다. 오히려 재정정책이 앞서가는 상황이다. 그뿐 아니다. ‘진보적’인 경제학자인 정운찬 전 서울대 교수를 국무총리 후보자로 영입했다.


정작 민주당은 달라진 게 없다. 전임 대통령들의 서거정국을 거치면서 ‘유지 계승’에만 매달렸다. ‘부자 감세’ 등 현 정권에 대한 비판도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으로 표적을 잃은 상황이다. 계속 같은 자리만 맴도는 양상이다.


정부의 친서민 정책이 인기영합적이고 이미지 포장에 치우쳐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을 진지한 성찰이나 고민 없이 껍데기뿐이라고 몰아붙이거나 비아냥거리는 방식으로는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진정성이 있는지 여부는 둘째 문제다. 그에 앞서 국민의 눈에 비치는 모습은 분명하다. 한나라당은 변화를 모색했고, 민주당은 그렇지 못했다. [한겨레신문 정남기 논설위원]

by shrek | 2009/09/25 11:00 | 정치, 경제 대충 보기 | 트랙백 | 덧글(0)

노무현 신당. 국민참여정당..어떻게 봐야 할까?

아마도 친노무현 성향의 신당이라 해야 알아들을 수 있겠다.
국민참여정당...어떻게 봐야 할까?

이름도 예전에 나왔던 거와 비슷하고, 방식도 한 번 나왔던 것을 차용했고.
암튼 나에게는 흘러간 옛노래를 듣는 느낌이다.
2003년 노사모 집행부 내부에서 제기했던 인터넷 기반의 정당 '정정당당', 그것을
그대로 차용해 만든 개혁국민정당(개혁당). 그리고 열린우리당.
많은 좋은 말들(당헌)이 있었고, 이러 저러한 시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실패했나?

사실, 나는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본다.
그러나 만든 사람들 입장에서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들 대부분은 국회 입성에 성공했으니까.

....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한 한나라당의 정치 독점을 깨기 위해서는
이러한 시도는 필요해 보인다.
민주당은 한참 더 가라앉아 철학부터 다시 정립해야 하고, 다른 세력들은
이러 저러 시도를 해 가면서 치열한 가치논쟁을 벌여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뻔한 내용과 그 뻔한 목적이 눈에 거슬리는 것은 할 수없다.
목적이 앞을 가리면 철학이나 가치들은 장신구에 지나지 않다.
...

사회디자인연구소라는 곳에서 정기적으로 메일이 온다.
국민참여정당에 대해 김대호소장이 장문의 글을 썼다.
사회디자인연구소(www.goodpol.net)   는 21C 진보정당을 모색하기 위해 만든 공개토론마당이라고 한다.
장문의 글이다. 양만큼 질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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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정당 성공의 조건 -위대한 생각이 무엇이 있나-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신당(국민참여정당 창당제안모임)은 여태까지 내가 아는 그 어떤 당보다 아는 사람이 많은 당이다. 마찬가지로 내 이름과 얼굴을 아는 사람이 가장 많은 당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신당이 명백하게 잘못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적어도 한번쯤은 성심 성의껏, 가능한 소상히 그 오류를 지적하는 것이 아는 사람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여의도에서 정치평론을 조금은 해 온 사람으로서의 회피할 수 없는 의무라고 생각한다. 관심과 애정이 없다면 비판도 없다. 가장 강력한 적의는 침묵과 무시다. 어쨌든 나는 같은 내용을 여러 번 반복해서 비판할 생각이 없다. 이제 당분간은 신당에 대해서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이 글도 두세 개로 쪼개서 올릴까 하다가 신당에 대한 유감이자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책무를 이번 기회에 확 털어버리고, 연구소가 하기로 한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장문의 글을 그냥 올린다. 호흡 짧은 독자들에게는 별로 친절하고 싶지가 않다.

 

나는 신당제안 모임이 제시한 창당 제안문, 10문10답집, 팜플렛(신대한민국 여권), 인터넷에 공개된 발기인 이력 등 공개된 자료만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그 중에서 창당제안문과 10문10답을 주요하게 분석했다. 이 글에는 신당을 추진하는 사람들의 생각의 정수가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창당과 관련해서 필요한 말이 무수히 많은데,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 안 했는지, 무엇을 강조하고 무엇을 강조하지 않았는지를 뜯어 보면 신당의 철학, 가치, 이념, 정서의 대강을 알 수 있다. 신당은 ‘참여’에 대한 강조, 국가/사회 비전이나 핵심 정책은 발기인 토론으로 넘긴데 반해, 지배구조, 대의원 제도 철폐, 16개 시도당 별 조직 등은 창당제안문(참여자와 제안자의 계약서)에 명시하므로 서 엄청나게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결론만 먼저 얘기하면 신당의 핵심 문제는 주요하게 표방하는 가치(참여)와 조직/지배 구조와 문화가 세 칸 오두막 이상이 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사실 ‘참여’라는 가치는 참여정부처럼 ‘국민들이 주인적 자세를 가지고 여럿이 함께 좋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자’는 식으로 쓴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이런 의미라면 ‘참여’는 ‘민주’나 ‘시민주권’이나 ‘연대’처럼 너무나 보편 타당한 가치가 된다. 그런데 당의 문턱을 낮추고, 대의원제도를 없애고, 인터넷과 핸드폰 등을 활용하여 참여자의 발언권, 결정권을 폭넓게 보장한다는 이유로, 다른 당은 소수 유력자가 주인인데 반해 신당은 국민이 주인이라는 식으로 얘기를 한다면 ‘참여’는 버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대역죄’를 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어쨌든 ‘참여’에 대한 과잉 의미 부여(도깨비 방망이처럼 생각하기)는 당내에서 풍성한 토론이 벌어지면 바로 잡히리라 생각한다. 문제는 창당 제안문이라는 계약서에 들어있는 조직/지배구조이다. 이는 새로운 사람들과 리더십이 들어오는 것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 칸 오두막 구조를 혁파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조직/지배구조를 혁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문화를 바꾸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다. 문화는 많은 사람이 들어와서 장시간 교제하고 활동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신당이 제시한 문건은 여태 내가 본 많은 정치결사(정치조직) 중에서, 표방하는 논리의 외적(현실적) 정합성은 접어두더라도 내적 정합성이 좀 떨어지는 편에 속한다. 현실(의도)과 논리(표현)의 모순이 많기 때문이다. 

 

대의원 제도 철폐 문제

신당의 조직(지배) 구조상 뚜렷한 특징 중의 하나는 “대의원 제도를 두지 않고 중요한 정치적 선택과 핵심 정책을 국민 토론과 당원 직접투표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 결정권은 “당비를 내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당원들에게 그에 부응하는 권리”로 확실히 부여된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어떤 정당이든지 당원으로서 권리와 의무가 명확하고, 권리(선거권, 피선거권)를 의무(당비 납부, 활동참여)와 긴밀하게 연동시키면, 초기에 당의 재정적, 인적 기반이 튼실해질 가능성이 높다. 물로 반대 급부로 평소 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은 단순 지지자들을 당의 중요한 결정(공직 후보자 선출 등)에 참여시키는 것은 어렵다. 따라서 중요 공직 후보 결정시에 국민경선(오픈 프라이머리) 형태를 취하기 어렵다. 단적으로 기간 당원이 5만 명이 넘은 민주노동당과 기간 당원이 20만 명이 넘은 프랑스 사회당은 2007년에 당내 경선을 통해서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였다. 하지만 새천년민주당과 미국 민주당은 기간당원이 명확하지 않았기에 국민경선(오픈 프라이머리) 형태를 취하여 당심과 민심을 근접시켰다.  2002년 당시 당내 기반이 약한 노무현은 이런 방식으로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 민주당이나 새천년민주당 방식이 더 낫다고는 할 수 없다. 일장일단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것은 평소 국민을 잘 섬기는 기간당원 중심으로 운영하다가 결정적인 시기에 오픈 프라이머리를 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몇 년 동안 당원으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한 당원들과 이들을 딛고 서 있는 계파 지도자들의 반발을 무마하는 것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것이 통설이다. 분명한 것은 현재의 신당 시스템을 유지한다면, 즉 권리와 의무를 긴밀히 연동시키면, 정작 민심과 당심을 일치시켜야 할 중요한 당내 선거를 치를 때, 신당은 당심을 좇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국민참여정당이라는 이름이 무색해 질 것이다. (내가 앞에서 신당의 문턱이 결코 낮아지지 않았다고 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이것이다) 신당의 이런 시스템은 가뜩이나 당의 주인이 되고 싶어하는 열망이 강하고, 또 권리를 주지 않으면 의무를 잘 이행하지 않는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로 당의 초기 동력을 구성하는데 따른 반대 급부가 아닐까? 그런데 참여연대, 희망제작소 등 시민단체의 후원자와 자원봉사자들은 가치와 사업과 리더십에 공감해서 지지, 성원, 참여 할 뿐, 권리와 의무를 긴밀히 연동시키지는 않는다.

 

어쨌든 대의원제도를 두지 않는다는 것은 신당이 힘주어 강조하는 조직/운영원리이다. 그런데 대의원 제도는 당원수가 적고, 결정해야 할 사안이 단순하고, 인터넷, 휴대폰 등 정보통신기술을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잘 활용하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정해야 할 사안이 많고, 복잡미묘하며, 당원수(열성참여자 수)가 많으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런 경우 대의원제도가 없어지면 복잡미묘한 사안은 대부분 지도부에게 일임되지 않을 수가 없다. 만약 복잡미묘한 사안이 전 당원 토론 및 투표에 부쳐지면 (인터넷 상에서) 집요하고 목소리가 큰 사람의 영향력이 커지지 않을 수가 없다. 요컨대 대의원 제도가 없으면 당이 양, 질적으로 성장했을 때는 최고 지도부와 소수의 선동가가 좌지우지 하는 당이 된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렇게 되면 ‘당원이 주인’이라는 신당의 대표 상품은 빛을 잃게 되어있다.

 

그리고 원초적으로 대의원제도는 단지 정보통신기술의 미발달의 산물 만은 아니다. 토론과 결정의 효율성과 효과성 제고, (현실이나 전체를 고려하지 않는) 목소리 크고 집요한 구성원에 대한 제어(포퓰리즘 제어) 등도 있다. 이는 공화주의의 철학적 기초의 하나이다. 요컨대 신당이 평범한 당원이라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사안만 다룬다면 대의원제도는 필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총회시 의견 블록을 만들겠다는 것도, 가두투쟁을 조직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정권을 잡겠다는 당이 처리해야 할 복잡미묘한 사안이 좀 많을까?

 

대의원제도는 조직이 양적, 질적으로 성장하면 반드시 필요하다. 조직이 왜소하면 여건에 따라 만들어 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요컨대 대의원 제도 유무는 전술적, 기술적 사안이기에, 대의원 제도가 없다는 것이 간판 상품이 되면 곤란하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이를 앞세운 이유가 무엇일까? 추측하건대 참여자, 당원이 주인이라는 것을 강조하거나 과시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 아닐까? 이는 철학, 가치, (국가 개조의) 비전, 정책이 조직의 영혼이 되지 않고, 당원이 주인이라는 컨셉(권력 구조)이 조직의 영혼이 된 특이한 정치조직의 불가피한 행보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아는 상식은 당원이 주인이라는 말은 ‘대한민국은 국민이 주인’이라는 말처럼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다. 대한민국은 국민이 주인인 것은 맞지만 대체로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소수의 유력자들(정치인, 언론사, 재벌대기업, 이익집단 등)이다. 그처럼 신당도 열린우리당, 새천년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과 마찬가지로 당원이 주인인 것은 맞지만 소수의 지도자가 당을 좌지우지 하게 되어있다. 이는 정치학의 상식이라고 알고 있다.

 

어쨌든 도덕성을 엄청나게 강조하는 사람은 사소한 도덕적 불찰에 큰 상처를 입기 마련인 것처럼, ‘당원 주인론’을 대표상품으로 내세우는 조직은 운영 과정에서 의외로 큰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조직 운영 과정에서 때때로 지도자들의 결단 내지 과두제적 운영이 필연이기 때문이다. 강조할 필요가 없는 것을 생명처럼 너무 강조한다는 얘기다.  

 

분권형 지배구조 문제

신당의 조직 구조상 또 하나의 뚜렷한 특징은 “시도당이 스스로 지역 정책을 결정하고, 공천을 자율적으로 관리”하며, “중앙 아래에 지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방이 연합하여 중앙을 구성”하며, “당의 최고 지도부에는 직선으로 선출된 16개 광역시도 대표가 참여”한다는 것이다.

 

대의원 제도가 없는 상태에서는 의도와 달리 최고 지도부의 권능이 매우 커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앞에서 얘기하였다. 그리고 지방 분권적 요소가 강한 조직 구조에서는 지방당 조직을 안정적으로 이끌고 있는 최고 지도부 성원의 권능이 매우 크고 안정적일 수밖에 없다. 창당제안문에는 광역시도당 대표는 자체적으로 선출하고, 이들이 사실상 공천권을 가진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방당이 수평적으로 결합하여 중앙을 구성하는 방식을 취하면(아무래도 동등한 발언권을 행사하기 십상이기에) 인구가 천만이 넘는 서울, 경기에 비해 훨씬 작은 인구를 가진 제주(55만) 울산(102만) 광주(145만), 강원(147만) 등 지방당 지도자(지방 맹주)의 권능이 여간 큰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신당의 지배구조는 지방당과 그 지도자의 이해와 요구가 철저하게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런 구조가 광범위한 국민들의 참여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 수 없다. 지방 활동가들의 참여와는 관련이 좀 있어 보이지만……

 

16개 광역시도당 별 조직 구조 문제

젊은 유권자나 진보, 개혁 성향 유권자들은 원래 지역에 대한 이해관계나 소속감은 약하다. 직업, 직장, 취향, 배우자/육아, 교육 조건 등을 따라서 마음대로 돌아다닌다. 구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광역 지자체도 바꾼다. 경기도에 살다가, 인천으로 이사하고, 다시 서울로 이사 가기도 하고, 광주에서도 살다가 전남에서도 산다. 높은 이동성과 지역에 대한 상대적 무관심은 유럽, 일본, 미국과 확연히 다른 한국인(젊은 유권자)의 특징이다. 당연히 관심 범위와 사고 방식이 전국구인 사람이 많다. 또한 상대적으로 직업, 직능적 이해관계가 강하다. 자신의 이익 여부와 상관없이 불의는 성토하고 정의는 찬양한다. 그래서 물질적 이익을 줄 것 같지 않는 노무현에 대해서 열광한 것 아닌가? 또한 진보, 개혁 성향의 유권자들 상당수는 네티즌으로 활동한다. 따라서 웹 공간에서는 진보.개혁 성향-민노당, 진보신당 성향이 아니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반면에 보수의 핵심 세력들은 대체로 이익이나 이권을 쫓는다. 이들은 재정, 자리나 정부의 규제/촉진권을 활용할 줄 안다. 한마디로 재정을 해먹을 줄 안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재정이 흘러가는 길에 포진해 있다. 이 길은 주로 지역이다. 선거구와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웹 공간에서는 약세지만 선거가 치러지는 지역에서는 그 영향력, 조직력이 막강하다. 정보도 적고 판단력도 취약한 약간 어리버리한 계층을 잘도 동원한다. 그래서 네티즌이 힘을 발휘하기 힘든 지방선거에서는 영. 호남 가리지 않고 해먹을 줄 아는 지방 토호(주로 토건족)들의 점유율이 점점 높아져왔던 것이다.

 

요컨대 내 얘기는 진보.개혁 성향 유권자들을 조직하려면 16개 광역시도별 당 조직도 필요하지만, 선거구별, 직능 별, 이슈(가치)별 조직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진보.개혁을 표방하는 정당은 직능 별, 이슈(가치)별 조직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진보.개혁 에너지를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진보가 그렇게 예찬하는 다양한 촛불 시위는 수많은 사람들이 주요 광역시의 중심지에 집결하긴 했지만 그 뿌리는 수많은 온.오프라인 모임(쌍코와 화장발로 대표되는 인터넷 까페/동호회, 동문회, 생협, 노조 등)이었다.

 

그런데 창당제안문에는 광역시도별 조직이 골간으로 명문화되어 있고, 이 단위가 지도부의 압도적 다수를 배출한다. 이는 정말 진보.개혁 정당과는 정말로 어울리지 않는 조직구조이다. 백 보 양보하더라도 16개 광역시도별 조직 구조 역시 대의원 제도 철폐처럼 창당선언문에 명기될 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직구조는 얼마든지 유연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당 참여와 동시에 16개광역시도 별 조직구조와 독특한 지배구조를 승인 받으려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친노 정당(노무현의 정신, 방법을 체현한 정당)이어서 혹은 당원이 주인인 정당이어서 지지하고 가입하는데, 이와 별로 관련이 없는 조직/지배 구조를 패키지로 승인 받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런 사안이야말로 전 당원 토론 사항이 아닐까 한다.

 

왜 지금 신당인가에 대한 설명

창당 제안문은 지금 신당 창당의 절박성을 이렇게 정리하였다.  

“이번에 창당하지 않으면 다음 총선 전에나 가능”할텐데, 그 때가 되면, “대선 후보들의 영향력이 너무 커져서 국민과 당원이 주인인 정당”을 만들기가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말도 다수 국민들이나 유력 정치인 팬클럽 사람들에게는 난해하다. 왜 대선 후보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이 문제인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국민 모두가 당원이 될 수 없는 노릇이기에(더 정확히 말하면 아주 특별한 사람만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당원이 될 수 있다) ‘국민이 당의 주인’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중요한 것은 대선 후보가 당의 사실상의 주인이냐 아니면 다수의 기간당원(열성참여자) 혹은 이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무명의 지도자들이 당의 사실상의 주인이냐는 것이다. 물론 형식적으로는 당원이 주인이 아닌 당은 없다. 현재 민주당 조차도……그런데 국민들은 당의 실질적인 주인이 누구인지는 별 관심이 없다. 거듭 말하지만 국민들은 정당의 조직 형태가 기간당원이 주인인지, 1인 보스가 주인인지는 관심이 없다. 마치 기업이 노동조합이 있는지 없는지, 종업원 지주제를 실시하는지 않는지, 족벌 경영을 하는지 전문경영인이 경영하는지 관심이 없고 그 상품.서비스의 품질과 가격에 관심이 있는 것처럼…… 물론 가능하면 노동조합도 있고,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전문경영인이 경영하고, 환경보호 등 사회적 책임도 잘 이행하는 기업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 가치들은 어디까지나 생산하는 상품.서비스의 품질/효용과 (라이프 싸이클 전체에 걸친) 가격 보다 우위에 오지는 않는다.

 

이처럼 국민들이 정당에 대한 관심의 핵심은 국민을 잘 섬기느냐 않느냐이다. 국민의 요구, 불만, 고통에 제대로 반응하느냐 않느냐이다. 종업원 지주제가 잘 실시되는 기업이 소비자를 잘 섬긴다는 보장이 없는 것처럼, 다수의 기간당원의 발언권과 결정권이 센 정당이 국민을 잘 섬긴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분명한 것은 기간당원(열성참여자)들과 이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무명의 지도자들이 평소 국민을 잘 섬겨왔다면, 국민들은 이런 사람들이 실질적인 주인인 정당을 지지하고 신뢰할 것이다. 따라서 제안문의 주장; (다음 총선 전에는) “대선 후보들의 영향력이 너무 커져서 국민과 당원이 주인인 정당을 만들기가 어려운 상황”을 우려하면서 지금 태동하는 신당에 아낌없는 지지와 신뢰를 보낼 것이다. 나 역시 작은 힘이나마 보탤 것이다. 그런데 과연 기간당원들과 무명의 신당 지도자들이 (비록 국민들은 잘 몰라도) 알만한 사람은 알 정도로 국민을 잘 섬겨왔던가? 시대정신을 잘 읽고 구현해 왔던가? 참여정부의 성과와 노무현의 합리적 핵심을 잘 계승하고, 그 한계와 오류를 뛰어넘으려는 노력을 치열하게 펼쳐왔던가? 나는 도통 알 수가 없다. 국민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기간당원들과 신당 지도자들이 대권 후보들을 능가하는 지지와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이 제안문은 아무런 감동이 없는 말이다. 오히려 기간당원들과 신당 지도부의 권력 욕의 발로로 보이지 않을까?

 

어떤 사람은 신당을 자꾸 유력 정치인과 연관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창당제안문에 나타난 신당의 조직/지배 구조와 정신을 보면 신당의 실질적인 주인은 기간당원(열성참여자)들, 좀 좁히면 최고 지도부, 더 좁히면 거기에 들어가 있는 지방당 지도자들이다. 신당이 제시한 문건에는 이들이 수도권 세력이나 유력 정치인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컨트롤 하는 주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과 기백이 진하게 베여있다. 이것이 감동을 주는지, 오버(over)인지는 독자가 판단할 일이다.

 

나는 지난 2004~2008년, 그 좋은 시절 대권 후보 급들이 보여준 졸렬한 모습에 이만저만 실망한 것이 아니다. 이 실망은 열린우리당에서 ‘참여’(기간당원제 사수)를 외치며 투쟁해 온 사람들도 비껴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들을 정신적으로, 정치적으로, 정책적으로, 조직적으로 압도하는 정치조직의 출범을 학수고대해 왔다. 아니 지난 몇 년 간 나는 그런 정치조직(정치조직에 필요한 부품=컨텐츠)을 만드는데 일조하겠다는 일념으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냉정하게 평가해보면 나를 포함하여 제대로 된 정치조직을 만들어 보겠다고 나선 사람들의 성과는 보잘것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 소망과 시도를 접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초라한 중간 성적표를 들고 진짜 시험장에 들어간다면 당연히 실력만큼 성적을 받을 생각을 해야 한다. 실력 이상으로 성적을 받으려 하면 부정행위를 하는 수 밖에 없다. 요컨대 나를 포함한 무명의 활동가들은 정당을 만들거나 참여할 때는 자신의 총체적 실력(역량)에 상응하는 만큼의 권능을 행사해야 한다는 말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정신과 방법을 계승하고, 높은 국민적 대중적 인지도와 신뢰도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국민의 첫 번째 종이 될 역량을 갖춘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의 기여, 실력에 상응하는 만큼의 권능을 행사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 나는 이것이 국민의 뜻이자,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아쉬운 형평(공평) 감각

사실 나는 신당(사람들)을 볼 때 제일 아쉬운 것이 형평 감각이다. 지난 열린우리당에서 ‘참여’(기간당원제 사수)를 외치며 투쟁한 사람들이 자신의 실력에 맞는 수준의 요구를 했더라면, 그래서 시간을 두고 당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했다면 열린우리당이 그렇게 허망하게 깨지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설사 깨졌다 하더라도 그 후신인 지금 민주당이 당원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평당원의 영향력도 거의 없고, 특정 지역 출신 연로한 사람들이 당의 하부를 구성할 정도로 퇴행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어차피 시간이 참여를 외치는 젊은 사람들의 편이었으니 시간이 가면서 점점 유리한 정치적 입지를 확보했으리라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나는 신당의 구조와 리더십과 문화를 보면 역량에 비해 욕심이 너무 크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누가 나보고 이름대면 알만한 유력 정치인의 참여 여부를 가지고 10만원 내기를 한다면 나는 신당의 환골탈태 없이는 절대로 유력 정치인이 참여하지 않는다는데 10만원을 건다. 아니 참여정부와 무관한 명망 있는 교수, 전문가 등도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데 10만원을 건다.

 

신당의 유전자 형성 방식

소수가 특정한 철학, 가치, 비전을 공공연하게 표방한 운동을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사람을 모았다면, 또 그 과정에서 표방하는 바를 검증, 발전시키고, 리더십을 재구축했다면 조직의 유전자는 폭발적 증식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신당은 이런 과정을 밟지 않았다. 신당은 공공연한 운동 없이 전화로, 이메일로, 인적 접촉으로 전국적으로 1642명을 결집시켰다. 그것도 대단히 특이한 창당선언문으로! 이는 여간 경이로운 일이 아니다. 당연히 외부자들은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불러모았을까, 이들이 공유하는 철학, 가치, 문화, 역사, 경험 등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세상이 다 아는 일이지만 1600여명의 상당수는 지난 몇 년 간 ‘참여’를 내걸고 숱한 전투를 치른 전우들이라고 할 수 있다. 참정연, 참평포럼, 참여정부 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얘기다.

 

참여를 표방한 이 조직/운동들이 다 실패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짙은 그늘 내지 심각한 오류가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을 것이다. 물론 진보, 개혁 진영 전체가 마찬가지였지만…… 어쨌든 ‘참여’를 내건 전투에 함께 했던 사람이 아니라면 전우애가 돈독한 창당 주체들이 이 조직/운동의 한계와 오류를 어떻게 반성했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지난 조직/운동이 별 문제 없었다거나-저 간악한 무리들 때문에 실패했다고 보거나- 한계와 오류를 성찰하지 않는 문화라면 새로운 참여자가 붙기가 매우 힘들다고 보아야 한다.

 

만약 창당 제안(주체) 세력이 과거의 조직/운동을 제대로 성찰하지 않는다면, 전우가 아닌 사람들의 눈에는 이들은 ‘여호와의 증인’처럼 자신들만의 독특한 철학, 가치, 문화를 공유하는 소수 집단처럼 비치게 되어있다. 어찌 보면 창당 제안(주체) 세력을 ‘참여 정치의 증인’들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이들이 시대와 국민이 요구하는 가치의 증인들이라면 엄청난 지지와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참여라는 가치는 그 정도는 아니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노무현에 대한 500만 추모 민심이 ‘참여’를 앞세운 조직/운동에 대한 지지로 조금은 올 수 있겠지만 많이 올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나는 신당이 ‘참여 정치의 증인’들이라고 해도 충분히 의미 있는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양당 구도를 흔들 수 있는 제대로 된 정당 건설의 한 블록으로서 존재 의미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들이 그 정당의 중심이 되려고 한다면 글쎄다.

 

나는 궁궐에 비유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정당은, 그것이 지하당이 아니라면, 태동단계부터 10명이 모이든, 20명이 모이든 그 가치와 노선을 공공연하게 표방하고, 대중적 검증, 토론과 작은 실천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작은 회오리 바람이 국민적 지지와 신뢰 에너지를 모아 거대한 토네이도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조직의 유전자를 형성할 때부터 참여를 제대로 조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신당은 과거 고립분산적인 민주/민중 운동이 전국조직을 형성할 때 그랬던 것처럼 지역별, 직능 별로 독립적인 신당 추진체(운동체)를 만들고, 각각이 내부 토론을 통해서 조직의 유전자(이념, 조직/지배구조, 리더십, 문화)를 형성하여 전국 단위 토론을 통해서 이를 발전시키고, 통일시키고, 공유하는 프로세스를 밟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참여 정치의 증인’들의 핵심들이 모여서 유전자를 형성하여 ‘짠’하고 나타나는 방식이 아니라!

 

신당의 위대한 생각은 무엇인가?

신당의 조직적 확장이 쉽지 않은 것은 무엇보다도 신당의 주인과 조직의 유전자가 명확하고, 그것이 국민을 잘 섬기는 첫 번째 종으로 발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조직/지배 구조에 창당 주체들의 협소한 안목과 이해관계가 너무 강하게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초가 삼칸을 지었다고 한 것은 가치 측면에서도, 조직/지배구조 측면에서도 ‘참여 정치의 증인’이 아닌 사람들에 대한 흡인력이 너무나 약하기 때문이다.

 

정말 신당에는 국민에게 감동과 기대를 줄 수 있는 위대한 생각이 없다. 위대한 생각 없이는 위대한 정당과 나라는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신당에는 힘센 정치세력(민주당 호남파, 수도권 정치세력)에 의해 휘둘리고, 내쫓기고, 무시당한 사람들의 권력의지 내지 방어의지가 강하게 드러나 있다. 정당의 주인이 되려고 하는 의지도 강하다. 이는 참여와 집단지성에 대한 과도한 신뢰와 연결되고, 나라를 정확히 알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던 김대중과 노무현의 정신과 방법을 멀리하도록 만들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신당은 완전히 새로 설계하지 않는 한 한나라당,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이 흡수하지 못하는 엄청난 정치적 에너지를 흡수할 수가 없다. 유력 정치인들과 새로운 정치를 할 수 있는 새로운 사람들은 결코 신당에 합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당이 거대한 궁궐로 발전하려면 참여를 중심에 놓으면 안 된다. 국가/사회 비전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 또한 무엇보다도 창당 주체 세력이 정당의 주인이 되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열성적인 참여자, 최고지도부, 지방정치조직 지도자들의, 신당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국민을 진정한 주인으로 섬기는 열정과 지혜로 바꾸어야 한다. 그리하면 원하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면 신당은 거대한 궁궐로 발전하고,창당 주체 세력은 그 궁궐의 주인이 되어 있으리라 생각한다. –끝-

 

사족

모르겠다. 표방하는 바와 달리 애초부터 작게 설계된 정당에 대해서 작게 설계 했다고, 쓸데없이 긴 비판을 늘어 놓은 것이 아닌지? 어쨌든 지금 대한민국은 양당 구도를 크게 흔들 수 있는 새로운 정당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진보, 개혁 진영은 민주당의 환골탈태가 희망이 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정치세력이 땅에서 솟아나지 않는다면 초가 삼칸 신당의 환골탈태가 희망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희망이 없는 민주당과 신당이 아옹다옹 다투는 꼴을 가슴 쥐어 뜯으며 지켜보는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대한민국으로서는 슬픈 일이고, 한나라당과 조중동으로서는 기쁜 일이다. 제발 이런 꼴은 보지 않기를!

 

by shrek | 2009/09/10 10:12 | 정치, 경제 대충 보기 | 트랙백 | 덧글(0)

정운찬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 MB의 변신

연 이틀 사이로 한겨레신문에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관련 글이 실렸다.
뭐라 해야 하나...한계는 뚜렷히 보이는데 먼저 욕할 수도 없고, 저러지도 못하는
눈에 띄는 것은, 정운찬 교수가 보수언론에서 진보학자라는 레테르를 선사받고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사실 진보학자는 아니니까.

이와 관련해 민기획의 박성민씨는 MB가 변했다는 글을 중앙일보에 실었다.

조국 교수와 손석춘원장 그리고 박성민씨의 글 모두 읽어 볼 만 하다.
앞으로 MB와 정운찬 총리가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지 뻔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궁금하다.

 

[시론] 정운찬 총리후보에게 바란다 / 조국 2009.9.7 월 한겨레신문


이명박 정부는 정운찬이라는 다목적용 ‘꽃놀이패’를 잡았다. 정 총리후보는 이명박 정부가 최근 꺼내놓은 ‘중도실용’ 노선을 더욱 그럴싸하게 만들고 정 후보에게 구애하던 민주당을 “닭 쫓던 개 꼴”로 만드는 한편, 여당 내 대권후보들을 견제하면서 충청권 민심을 잡는 카드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등 야당은 정 후보를 “변절자”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정 후보는 애초에 ‘진보파’ 경제학자도 아니었고,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 같은 ‘지사’(志士)도 아니었다. 그는 정치적으로 중도적 자유주의를, 경제적으로 케인스주의를 견지해왔기에 ‘중도실용’ 노선의 강화에 힘을 보태겠다는 것을 비난하기는 힘들다. 이미 ‘준(準)정치인’의 행보를 걸어온 그는 어느 편에 자신의 몸을 싣는 것이 이익인지 경제학적으로 따져보았을 것이다. 그 결과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 이후에도 재집권의 비전과 전망을 내놓지 못하는 민주당보다 이명박 정부가 더 투자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고 ‘올인’한 것이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필자는 정 후보가 자신의 이름값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그가 그간 이명박 정부가 보여준 ‘난폭 역주행’에 브레이크를 걸고 진중하고 속도를 조절하는 ‘우회전’을 선도하길 희망한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낙관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는 ‘제왕적 대통령’의 ‘역린’(逆鱗)을 건드리지 않아야 하고, 기세등등한 대통령의 ‘가신’과 ‘창업공신’을 아울러야 한다. 사실 현행 대통령제하에서 국무총리는 실질적 권한을 많이 갖고 있지 않으며, 보장된 임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신자유주의’와 ‘강경보수’로 골수까지 무장한 ‘엠비맨’들이 쉽게 입장을 바꿀 것 같지도 않다. 정 후보의 전공인 경제분야만 하더라도 강만수씨가 경제특별보좌관으로, 윤진식씨가 정책실장 및 경제수석으로 떡하니 버티고 있다. ‘공안통치’를 이끌어 온 청와대, 검찰, 경찰, 정보기관 내 ‘공안파’가 인사권자가 아닌 정 후보의 눈치를 볼 리 만무하다.


이제 정 후보는 갈래 길 위에 서 있다. 첫째는 4대강 사업, 금산분리, 감세정책 등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접고 이명박 정부의 ‘얼굴마담’이 되는 길이다. 둘째는 정권 내부의 투쟁을 감수하면서 국정운영의 방향을 진짜 ‘중도실용’ 쪽으로 몇 걸음 옮겨 놓는 길이다. 전자는 매우 쉽고, 후자는 매우 어렵다. 정운찬씨는 학자와 교수로서 명망을 쌓았다. 그러나 그에 대한 최종적인 역사적 평가는 이명박 정부 국정운영의 핵심 책임자로서 그가 어떠한 역할을 하였던가에 달리게 될 것이다.


지면 관계로 필자는 정 후보가 국무총리로 부임하였을 때 즉각 해야 할 일로 딱 두 가지만 건의하고자 한다. 첫째는 용산참사의 해결이다. 사건 발생 7개월이 넘도록 병원 영안실 냉동고에는 장례도 치르지 못한 다섯 구의 시신이 있다. 종교단체와 시민사회단체는 연일 정부의 사과와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지만, 정부는 사인간의 일일 뿐이라며 외면하고 있다. ‘공안통치’의 정당성이 훼손될까 두려운 것이다. 용산참사 해결 없는 국민통합이란 헛소리에 불과하다. 용산 제4구역을 방문하는 국무총리의 모습을 기대한다.


둘째, 비정규직법의 충실한 집행이다. 최근 발표된 노동부의 비정규직 노동자 실태조사는 그간 노동부, 여당, 보수언론이 주장해온 ‘100만 해고대란설’이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을 보여주었다. 경제학자인 그는 이미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가 중 최고 수준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노동시장은 ‘유연성’ 외에도 ‘안정성’이 중요함도 알고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유도하는 정책수립에 앞장서는 국무총리를 보고 싶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손석춘칼럼] 참여도 순수도 아닌 / 손석춘 2009.9.8 화 한겨레신문


순수와 참여. 한때 지식인을 가르는 기준이었다. 군부독재 시기, ‘순수문학’을 자부한 윤똑똑이들이 그랬다. 물론 그들의 생활은 순수하지 않았다. 심지어 가장 현실적인 사회과학인 경제학조차 그랬다. ‘순수경제학’이라는 가당치 않은 말이 퍼져 있었다.

군부독재가 물러나면서 순수와 참여라는 생게망게한 구분은 시나브로 사라졌다. 하지만 말의 혼란은 가시지 않았다. 이명박 정권의 총리로 등장한 정운찬 교수를 보자. 대다수 언론이 그를 ‘마당발’로 소개했다. 각계에 거미줄 인맥을 갖췄단다. 좌에서 우까지 폭넓게 포진했단다.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도통 이해하기 어렵다. 모든 이에게 좋게 평가받는 사람을 경계한 공자는 접어두자. 교수, 특히 사회과학자가 좌에서 우까지 마당발이 가능한가? 더 말살에 쇠살은 마당발 교수의 ‘참여론’이다. 교수 정운찬은 평소 ‘책상머리’보다 ‘현실참여’를 강조했단다.


물론 경제학자가 ‘순수경제학’을 고집하지 않고 ‘참여’를 고심한다면 대견한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무엇이 순수이고 무엇이 참여인가에 있다. 누구도 특정 사회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령 순수문학이나 순수경제학 또한 특정한 참여다.


정운찬은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30년 넘게 강의했다. 총장까지 지냈다. 그 격동의 세월 내내 그는 과연 어느 곳에 참여했을까?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물론, 친민주당 지식인들까지 그를 높이 평가할 때마다 나는 참 궁금했다. 대체 정운찬은 무엇을 해왔을까. 굳이 해직 교수들과 그를 비교할 생각은 없다. 삶의 대부분을 대학 밖에서 경제학자로 걸어간 고 박현채와 견주기란 더 그렇다.


이미 서울대는 김수행 교수의 정년퇴임으로 진보적 경제학의 씨가 말랐다. 학생들 요구는 묵살당했다. 명토박아 둔다. 교수의 현실 참여는 총리를 비롯한 ‘권력의 자리’에 나가야 가능한 게 아니다. 참여는 자신이 몸담은 대학 현장에서 시작해야 옳다.


가령 박정희가 민주주의를 압살하던 시기에 몇몇 교수들은 학생 속으로 들어가 토론하며 그들을 지식인으로 키워갔다. 그 시기 대학이 민주주의의 진지였던 까닭도 학생들과 더불어 호흡하는 몇몇 교수의 열정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요즘은 어떤가. 그런 교수가 아예 없는 대학이 많고 있더라도 극소수다.


언제부터인가 교수의 현실 참여는 학생들과 무관하게 이뤄졌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그나마 개혁적 교수들이 학교 밖 활동에 분주하면서 대학의 보수화 또는 수구화가 더 짙어갔다. 신자유주의 체제에 친화적인 교수가 80%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흔히 대학생 보수화를 들먹인다. 그런데 교수가 무람없이 그런 진단을 내리거나 그 책임을 학생들에게 돌리는 모습은 민망하다. 묻고 싶다. 대학생 보수화를 개탄하는 교수들은 과연 얼마나 학생들에게 다가갔을까. 학생 속으로 들어가 학습 동아리를 만들며 그들이 처한 현실을 어떻게 넘어설까를 더불어 모색해가는 지성인이 오늘의 대학에 얼마나 될까. 보수 또는 수구가 절대다수인 교수 사회, 그나마 일부인 ‘참여 교수’들은 밖으로 나도는 강단 현실이 20대의 좌절을 무장 깊게 해온 중요한 이유는 아닐까.


바로 그 맥락에서 정운찬 교수의 현실 참여론은 소가 웃을 일이다. 신자유주의를 ‘유일신’으로 숭배하는 부라퀴들이 활개 치는 한국 경제계에서 그가 참여할 수 있는 길은 지금도 곳곳에 나 있다. 현실 참여를 언죽번죽 부르대며 시장만능주의 정권의 총리로 들어가는 그의 ‘지성’이 천박하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그렇다. 이명박 정권의 총리로 나선 정운찬의 ‘결단’은 결코 참여가 아니다. 그렇다면 순수일까. 더욱 아니다.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시론] ‘정치’에 눈뜬 MB의 변신 / 박성민 2009.9.7 월 중앙일보


이명박 대통령이 변했다. 정치적으로 움직인다. 국민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좋은 정책도 필요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필요할 뿐’이지 충분한 것은 아니다. ‘진정성’만 갖고는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안 것이다. 정책도 중요하지만 정치는 더 중요하다. 대개 대통령의 실패는 정책이 아니라 정치 때문이다.


기업인은 현실을 빨리 받아들인다. 상황이 바뀌면 생각을 바꾸고, 방식도 바꾼다. 기업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도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 빠르다. 이번 개각도 대통령이 변했음을 보여준다. 민주당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정운찬 총리 후보자의 변심 혹은 변화에 놀라는 모양이지만 나는 대통령의 변화에 더 놀란다. 물론 정작 놀라야 할 대상은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변화는 자신의 지지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서 출발한다. 당의 지지율에도 못 미치는 지지율은 대통령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무력화시켰다. 사실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봤다면 이런 상황은 예견할 수 있었다. 그는 군 출신인 박정희·전두환·노태우가 갖고 있던 ‘물리적 기반’이 없다. 민주화운동 출신인 김영삼·김대중이 갖고 있던 ‘역사적 기반’도 없다. 또 노무현이 갖고 있던 ‘도덕적 기반’도 없고, 잠재적 대권주자인 박근혜·정동영·이회창이 갖고 있는 ‘지역적 기반’도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실적’ 외에는 권위를 담보할 기반이 없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취약한 기반이 역설적으로 그의 기반(?)이 되고 있다. 편하게 기댈 곳이 없는 그로서는 눈에 보이는 확실한 성과를 내놓아야만 한다. 그는 기업 최고경영자(CEO)처럼 실적으로 대중적 기반을 만들고 싶어 한다. 비효율적인 여의도와 거리를 두고 국민들을 상대로 ‘진정성’을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았다.


여의도와 거리를 두면 둘수록 여의도의 현실적 힘을 실감했다. 미디어법이나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강력한 정책 추진을 위해서는 여의도의 도움이 절실했을 것이다. 녹색성장, 행정체제 개편, 개헌, 정치개혁, 4대 강 사업 등 어느 것 하나 여의도의 도움 없이는 추진할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 인사에서 정무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특임장관과 정무특보를 새로 임명했다. 이것은 경제나 정책기능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자신감의 방증일 수도 있다. 어쨌든 최근 청와대는 중도, 실용, 서민, 통합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확실히 ‘법치’에서 ‘정치’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대통령과 청와대가 분명한 목표를 향해 전략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대통령에게 지지율 회복을 위한 전략적 목표는 두 가지다. 전통적 지지기반인 보수층의 지지를 결집하고, 지난 대선 때처럼 중도층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보수층의 이탈을 막기 위해서는 흔들렸던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하는 한편 북한에 대한 원칙적 대응을 유지하는 것이다. 또한 한나라당의 요구대로 의원들을 입각시킴으로써 이 정권이 한나라당 정권임을 분명히 했다. 박근혜 전 대표를 유럽에 특사로 보내고 최경환 의원을 지식경제부 장관으로 발탁하는 등 화해 모드로 접어들었다. 집권 후 이탈했던 중도층의 지지를 되돌리기 위해서는 친서민 정책 입안, 통합을 위한 지역적 인사 안배,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 수용, 정운찬 총리 내정 등의 다소 파격적(?)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감 있게 통합을 위한 정치에 시동을 걸었다고 본다. 지지율도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 정운찬 총리 기용의 성공 여부는 지금은 알 수 없다. 다만 그에게 총리를 맡긴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가 순항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실적을 남길 것이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


by shrek | 2009/09/08 10:00 | 정치, 경제 대충 보기 | 트랙백 | 덧글(1)

조국교수 오마이뉴스 특강. "욕 많이 먹는 MB지지율이 오르는 이유?"

서울대 조국 교수가 오마이뉴스 특강을 했다.
찬찬히 읽어보면 현 정치구도에서 무엇이 핵심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좋은 내용이라 오마이뉴스에서 살짝 가져왔다.
 

"욕 많이 먹는 MB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진보도 밥 먹여준다'는 답내놔야 희망 있다"

09.08.28 15:21 ㅣ최종 업데이트 09.08.28 15:44 이승훈 (youngleft)/ 남소연 (newmoon)
 
"얼굴 잘생겼고, 글도 잘 쓰고, 게다가 생각도 진보적이기까지…"

 

소개를 받는 조국(44) 서울대 법학부 교수의 얼굴에 약간의 붉은 기운이 돌았다. '엄친아'스런 본인 소개에 쑥스러워하던 그. 27일 저녁 7시 상암동 누리꿈스퀘어 대회의실에서 열린 '10만인클럽 특강' 두 번째 초대 손님은 바로 조국 교수였다.

 그는 부인하겠지만 사실 조 교수는 '엄친아'라는 말이 세상에 나오기 훨씬 전부터 그 자격을 완벽하게 갖춘 '원조 엄친아'였다.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법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버클리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줄곧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며 다양한 사회활동에 참여해 왔다.

 2000년 이후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을 지내며 시민운동에 발을 내디뎠고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의원회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현재는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과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엔 대중에게 호감을 주는 외모와 말솜씨 덕에 정치권으로부터 심심치 않게 '러브콜'을 받고 있기도 하다.

 저술활동도 활발하다. 조 교수는 언론 매체에 활발하게 칼럼을 쓰는 한편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2001년), <성찰하는 진보>(2008년), <보노보 찬가>(2009년) 등 사회적 의제에 대한 진보적 시각을 담은 책들도 꾸준히 세상에 내놨다. 

 이날 강연에서 조 교수는 '성찰하는 진보, 다시 희망을 말하다'를 주제로 깊이 있는 분석을 들려줬다.

 "MB 지지율 상승, 왜?... 진보도 밥 먹여줘야 살아난다"

 조 교수는 먼저 "성찰하지 않는 진보의 집권은 가능하지도 않고, 운이 좋아 집권하더라도 대중들이 실망해 다시는 진보진영에 표를 주지 않겠다고 할지도 모르는 일"이라며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만이 높아져도 왜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오르는지 진보진영이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는 시쳇말로 이명박 정부가 또는 이명박 대통령 개인이 아무리 '닭짓'을 해도 정권이 진보진영으로 오지 않는다는 의미"라며 "인권이,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냐고 하는 사람들에게 '밥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오답 대신 '진보가 밥을 먹여준다'는 답을 내놓아야 진보적 가치를 국민적 가치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광장의 정치·거리의 정치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동력이지만 그것만으로 세상이 바뀌는 시대는 지나갔다"며 "진보적 가치가 맞는지, 실현 가능한지를 따지는 '까다로운 소비자'를 진보진영이 설득하고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또 "이명박 정부가 중도실용은 아니지만 그 프레임 자체는 잘 잡았다고 생각한다"며 "중도실용이라고 먼저 선언하면 주위에서 아무리 아니라고 비판을 해도 먼저 선언한 사람이 이기게 돼 있다. 그런 논쟁이 벌어지는 것 자체가 (이슈를) 선점한 사람의 승리로 흐르는 게 현대 정치"라고 설명했다. 이어 "선거구제 개편 문제도 진보개혁세력은 그 프레임을 따라잡는 데 그치고 있다"며 "역설적으로 진보세력의 정치적 무능력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출마 등 정계 진출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일단 선을 그었다. 그는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개입해야 하지만 정치인이 되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정치에 뛰어들려면 대중들 앞에서 완전히 발가벗는 용기가 있어야 하는데 나는 아니다, 학자로서 해야 할 일이 많은 것 같다"고
밝혔다.
이밖에 조 교수는 이날 이명박 정부의 중도강화론에 대한 비판, 민주연합론에 대한 생각, 진보가 나아가야 할 방향 등 여러 주제에 대해 많은 말들을 쏟아냈다. 청년 대학생부터 노년층까지 자리를 메운 150여 명의 청중들은 그의 강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강연이 끝나고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는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져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기기도 했다.

 조국 교수의 강연을 주제별로 재정리했다.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장례식 모드로 살 순 없다... 스톡홀름 신드롬 벗어나야"

 "이명박 정부에 대한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해야겠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최근 중도강화론·중도실용주의를 들고 나왔죠.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는 관용과 화합을 제시했습니다. 다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지금 중도의 이름하에 진행되고 있는 정책을 보세요. 부자들 세금 깎아주고 간접세 등을 통해서는 약자들의 세금을 올리고 있습니다. 복지 예산은 깎고 있죠. 입시문제에 있어서는 '친학원' 정책을 일관되게 밀고 있어요. 재래시장 가서 어묵 사먹는다고 해서 중도친서민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차라리 호텔에서 초호화 요리를 먹더라도 정책만 친서민적이었면 좋겠어요. 그런다면 이 대통령이 달팽이 요리를 먹든 무엇을 먹든 아무도 비난하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고 있습니다. 요즘 '효자동 개가 울어도 이명박 때문'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데(좌중 웃음) 그만큼 사람들이 짜증이 난다는 것이겠죠.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오르고 있습니다.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이 돌아가신 후 수백만 명이 조문을 하고 광장에 수십만 명이 모여서 마음속에 비석 두 개를 세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오르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은 잘 이해가 안 가겠지만 이게 현실입니다. 함의는 무엇일까요? 시쳇말로 이명박 정부가 또는 이명박 대통령 개인이 아무리 '닭짓'을 해도 정권이 진보진영으로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현 정부에 대한 불만이 올라간다고 해서 그다음에 진보진영이 집권하거나 진보적 가치가 저절로 실현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계속 장례식 모드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그들의 고통이 어디에 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풀어야하는지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그리고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사람과 조직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세상은 바뀌지 않습니다.

 저는 서민대중들이 '스톡홀름 신드롬'에 사로잡혀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톡홀름 신드롬은 인질들이 오히려 경찰을 적대적으로 대하고 인질범을 우호적으로 대하는 현상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서민적이지도 않고 중도실용적이지도 않지만 대중들은 자신들을 정말 구해줄 믿을 만한 존재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시장지상주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고 믿는 것이죠. 그래서 자신을 파멸의 길로 데리고 가는 정책을 수립하는 사람을 믿고 투표하는 겁니다.

 지난 총선에서 김근태-신지호 후보의 대결에서 신 후보가 승리했는데 유권자들에게 어떻게 신 후보에게 표를 줄 수 있느냐고 비난한다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런 비난은 지식인들의 오만입니다. 대중들은 투표소에서 김근태를 안 찍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분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빚은 다 갚았다고 생각한 것이죠. 진보진영이 사람들의 삶을 책임질 수 있다는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지 못한 잘못이 있습니다. 진보진영은 권력을 잡을 경우 어떻게 사람들의 고통을 줄이고 꿈을 실현해 줄 것인지, 대중들이 이해하고 믿을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그것을 하지 못한다면 실패는 예정돼 있다고 봐야 합니다."

 MB 반대하면 다 모여라? 민주연합론의 실체

 "현재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 상황이 후퇴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미네르바에게 적용됐던 법률은 40년 동안 적용된 적이 없었고 좌파 우파를 떠나서 법률가라면 유죄가 될 수 없다고 봤습니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의 배임 혐의도 아무리 봐도 형법상 배임의 고리가 없었죠. 법원의 조정 권고를 받아들인 것이 유죄라면 법원의 조정이 다 없어져야 하는 것인데 엄청난 혼란이 올 것입니다. 법원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됐는데 파시즘 체제였다면 유죄 판결을 받았을 겁니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였다면 기소도 안 되는 사건이었죠.

 과거 파시즘 정부 하에서는 법보다는 주먹이 가까웠습니다. 학생 시절에 시위하다가 관악경찰서에 끌려갔는데 경찰관에게 나에게는 묵비권이 있다고 하니 한 대 때리면서 '매를 벌어' 이러더군요.(좌중 웃음) 당시는 법이나 피의자의 권리를 이야기하면 더 때렸습니다. 지금은 주먹을 쓰지 않지만 법적인 절차를 밟아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무죄를 받을 줄 알면서도 기소를 함으로써 정치적·사회적 활동에 지장을 초래하도록 골탕을 먹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를 막자며 민주연합론이 나온 모양입니다. 하지만 민주연합론은 생존의 프레임이지 승리의 프레임은 될 수 없습니다. 이명박 반대하는 사람 다 모이라는 것인데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모일 것인가에 대해서는 말이 없고 그냥 다 모이라는 겁니다."

 "영웅호걸의 시대는 끝났다, '쫀쫀한 사람'들이 주역"

 "'촛불 시위'는 정치적 한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이나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밑으로부터 정권을 바꿔본 경험이 있기에 '촛불 시위'가 가능했던 겁니다. 그런 '광장의 정치', '거리의 정치'는 민주주의 동력이고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사회가 바뀌지 않습니다. 87년 전에는 광장의 정치만으로도 사회를 바꿀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변했습니다. 

 '영웅호걸'의 시대는 갔습니다. 쫀쫀한 사람들, 다시 말해 까다로운 소비자들의 시대가 왔습니다. 예전 민주화 운동을 할 때는 영웅호걸이 외치면 사람들은 목숨 걸고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들은 쫀쫀하게 까다롭게 따집니다. 진보적 가치, 정책에 대해 그것이 맞는지, 현실성이 있는지, 예산은 어떻게 동원할 것인지 끊임없이 묻습니다. 그렇다고 쫀쫀하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까다로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진보적 가치가 국민적 가치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상품이 아무리 좋다고 외쳐도 사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보의 가치를 말하는 사람이 꼭 피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왕년에', '내가 학생일 때 이랬어'라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현재를 삽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너무나 냉정해서 필요한 과제를 성취하고 밀고 나가면 뒤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미래를 향해 나아갈 뿐이죠. 제 수업을 듣는 대학교 1~3학년생들 5·16, 5·17, 5·18, 6·10 항쟁을 역사적 순서대로 말해보라고 어느 게 먼저인지 잘 모릅니다. 학생들에게는 과거보다 현재 '왜 88만 원밖에 못 받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진보는 자기편이 아닌 보통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가지고 있고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알고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성찰하고 민해야 합니다. 민주대연합을 통해 민주주의와 인권 회복하자는 것에 찬성하지만 핵심은 민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일자리의 문제, 교육의 문제 주거의 문제 세 가지를 풀어내야 합니다."

 진보의 잃어버린 10년 올수도... 그래도 멋지게 잽 날리자

 

"인권이 밥 먹여주냐, 민주주의가, 진보가 밥 먹여주냐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진보진영의 답은 '밥보다 중요한 게 있다'였습니다. 맞는 말이지만 정답은 아닙니다. 이것은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답입니다. 진보가 밥을 먹여준다고 답을 해야 합니다. 진보는 어떻게 밥을 만들고 나누는지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문제는 대중들에게는 큰 틀에서 한번은 해결된 문제입니다. 후퇴하고 있지만 정치적 민주주의가 관철되고 있고 선거제도가 유지되고 대의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대중들의 고통의 중심은 이 문제가 아니라 밥의 문제가 중심입니다. 젊은 층은 졸업해서 어떻게 정규직 일자리를 잡을까가 최대 고민입니다. 지식인들이 이들에게 사회문제에는 관심이 없고 토익만 공부한다고 하면 당신은 정규직이니까 그런 이야기 한다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입니다. 또 과거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민주화 인사들 이제 다 보상받지 않았느냐고 이야기 할 것입니다. 진보진영이 성찰하지 않고 이 문제에 답을 주지 못한다면 미래는 없습니다.

두 번째 연대의 문제가 남습니다. 진보는 집권여당 시절에도 소수파였습니다. 지금은 실권한 소수파가 됐는데 과연 연대 없이 다시 집권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국민의정부, 참여정부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보수와의 연대를 통해서 가능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지막 인터뷰>에서 '못난 사람들끼리 연대하자'고 했는데 공감합니다.

지금까지는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또 한가지가 있습니다. 진보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섹시한 사람,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최소한 주위 사람들에게 저 사람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사람은 맘에 든다는 이야기는 들어야죠. 그래야 진보적 가치를 국민적 가치로 바꾸는 것이 가능해 집니다.

 2012년 진보진영이 패배할 수도, 승리할 수도 있습니다. 진보의 잃어버린 10년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더라도 멋지게 싸워보고 져야지 관객들도 다음 게임을 기대할 것입니다. 그게 아니고 '잽' 한방에 날아 간다면 완전히 관심에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진보진영은 성찰하고 연대하지 않으면 집권하기 힘듭니다. 그러지 않았는데 운이 좋아서 권력을 잡는다면 더 문제입니다. 대중들이 진보진영에 실망해서 절대 다시는 표를 주지 않는다고 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by shrek | 2009/08/31 11:28 | 정치, 경제 대충 보기 | 트랙백 | 덧글(1)

박성민 '정치를 아무나 해도 된다고?'

정치 컨설팅 [민기획] 사장인 박성민씨가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상식적인 글입니다.
상식과 비상식이 과거부터 계속 혼재되와서 그런지 이런 상식적인 글이
그냥 쉽게 상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네요.

...

참고로, 박성민씨가 내놓은 [강한 것이 옳은 것은 이긴다]는 선거 관련책으로는
최고라 생각합니다.
정치와 선거의 함수관계 그리고 한국의 선거 매커니즘에 대한 답이 충분히
들어 있습니다.
  
[중앙시평] 정치를 아무나 해도 된다고? 2009.6.24
“좋은 정치는 모두 잠든 새벽에 쓰레기 치우는 청소차 같은 것
우리 정치는 대낮에 아파트 단지서 수박 파는 트럭처럼 시끄러워”
당신이 지리산 청학동에 산다고 해도 정치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독도나 마라도에 있는 사람에게도 정치는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정해준다. 신체를 구속할 수도 있으며, 돈도 걷어가며, 군대로 데려가기도 한다. 그것도 모자라 당신의 머릿속도 들여다보고 싶어 한다.

정치는 법을 통해 당신을 그토록 철저히 관리한다. 황당하고 불쾌하지만 정치는 당신의 아랫도리도 관리한다(간통죄라는 것이 있다). 당신이 정치에 관심이 있든 없든 상관없다. 정치는 당신을 무관심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정치는 당신의 행동만이 아니라 ‘정신세계’도 지배한다. 정권의 성격(솔직히 말하면 대통령의 성격)은 개인의 성격에 아주 크게 영향을 미친다. 프랑스의 작가인 장 폴 뒤부아는 『프랑스적인 삶』에서 한 프랑스 남자의 자화상을 다섯 번이나 바뀐 정권의 변천사 속에서 밀도 있게 그려냈다. 9부로 된 목차 자체가 프랑스의 대통령 이름으로 되어 있다.

사실 그런 소설을 쓰기에는 한국 현대사가 제격이다. 개인의 내면적 자화상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 보면 우리의 대통령들보다 더 훌륭한 소재가 있을까. 예컨대 『한국적인 삶』이라는 소설의 목차가 1. 이승만 2. 윤보선 3. 박정희 4. 최규하 5. 전두환 6. 노태우 7. 김영삼 8. 김대중 9. 노무현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해 보라. 이들이 한국인의 삶에 끼친 정신적 충격을 감안할 때 얼마나 극적인 소설이 탄생할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당신이 정치에 아무리 냉소적이어도 정치는 당신으로부터 단 1㎝도 떨어지지 않는다. 원하지 않더라도 정치는 당신의 삶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현실적 지배력이다. 그 때문에 정치는 사회에 대한 철학, 의지, 전문성이 없으면 해서는 안 된다. 정치는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의 영역이다. 우리 정치의 끔찍한 불행은 정치가 갖는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것이 아니라 이 엄청난 힘을 아마추어들이 다룬다는 사실이다. 선거에 나가 당선되었다고 저절로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영화를 보고 평론은 할 수 있지만 영화를 그처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축구 클럽의 전술에 대해 비평할 수는 있지만 그들처럼 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왜 정치는 아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외교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외교는 전문가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외무고시를 합격한 외교관에게 그 일을 맡긴다. 재판은 매우 전문적 영역이기 때문에 사법고시를 합격한 사람들에게 맡기는데 그것도 일정한 연수를 거쳐야만 한다. 군인이나 경찰, 의사를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학교는 있는데 왜 정치는 전문적으로 교육하지 않는 것일까?

정치가 외교보다 쉽다고? 천만의 말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정치다. 정치는 ‘어젠다(Agenda)’를 ‘논어젠다(Non-Agenda)’로 바꾸는 기술이다. 이슈를 이슈가 안 되게 만드는 타협의 기술이다. 불확실한 것을 확실하게, 불투명한 것을 투명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좋은 정치는 그 일을 국민들이 모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좋은 정치는 모두가 잠든 새벽에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차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여름 대낮에 아파트 단지에서 수박을 파는 트럭처럼 시끄럽다.

정치적 견해를 결정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모든 사람의 의견이 하나로 통일되는 것이다. 만장일치. 이건 불가능하다. 둘째, 반대자의 견해를 폭력으로 제압하는 것이다. 전쟁이나 독재로 가능하다. 이건 악순환이다. 그래서 셋째, 협상을 통해 타협을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필요한 이유다. 협상과 타협은 외교보다 훨씬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한다. 소시지 만드는 과정과 정치 협상 과정은 절대 들여다보지 말라지 않는가. 역겨워서 못 본다는 뜻이다. 정치란 원래 그런 것이다.

협상과 타협의 정치가 되려면 민주주의를 제대로 훈련받은 정치인이 해야 한다. 그도 아니라면 초보 정치인을 보좌하고 지원할 전문인력을 포함한 안정적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이도 가능하지 않다면 최소한 협상과 타협을 이해하는 경륜의 정치인들이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에겐 어느 것 하나 없다. 정치가 전쟁으로 가는 이유다.

군사정권 때인 1970, 80년대는 육사 출신들 데려다 썼다. 90년대 이후에는 운동권 출신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그런데 지금은? 정치인이 전문적으로 양성되지 않는 것은 나라에 큰 재앙이다. 경험 많은 원로 정치인들은 뒷방으로 내몰리고 시스템은 아직 자리 잡지 못했다. 그래서 걱정이 태산인데 오늘 또다시 국회에는 전운이 감돈다.

by shrek | 2009/06/28 15:20 | 정치, 경제 대충 보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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